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가 : 14,000

작가명 : 표명희 (지은이)

출판사 : 강

출간일 : 2019-05-17

ISBN : 9788982182389 / 898218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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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명희의 네번째 소설집. 200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명희는 그간 정확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고립과 소외의 일상을 묘사하면서 미미하지만 참신하고 강렬한 인간 소통의 드라마를 다채롭게 발굴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희망은 왜 늘 오류일 수밖에 없으며, 어째서 오류 속에서만 희망은 진실할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표제작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에서 서사를 이끌고 가는 동력은 ‘서정’과 툭툭이 기사 ‘촨’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핵심 동기는 오류에 대한 강박증이다. 한때 야심만만했던 디자이너이자 정상을 코앞에 두고 있던 회사의 공동 창업자나 다름없던 서정은 충분히 의심을 했음에도 결국 ‘사람’을 믿었기에 회사의 몰락을 피할 수 없었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재치 있고 능력 있는 촨에게 마음이 가면서도 그가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믿지 못하는 서정은 여행 내내 촨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에 쫓긴다. 서정이 세 달 만에 캄보디아를 두번째로 방문하게 된 것도 이러한 초조함 때문인데, 도시의 도처에서 나뒹구는 사원의 부서진 조각들이 건네는 여유롭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모두가 부서진 꿈들의 잔해에서 살고 있는 땅에선 자신의 실패 역시 그리 특별할 게 없다. 그러나 서정은 이미 도시 자체가 몰락한 꿈의 박물관임에도 유독 박물관을 특별한 장소로 생각하며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삼으려 한다. 박물관이라는 장소가 강제하는, 대상과 ‘나’ 사이의 객관적이고 차가운 거리가 실패한 꿈과의 치명적인 얽힘 역시 정리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비상을 꿈꾸는 이 오류의 여정은 그러나 자신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는, 어쩌면 자신은 처음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그걸 알아왔다는 사실과 마주하며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최종 목적지가 허무주의적 체념인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는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외부’의 이질감이 남는다. 설령 그것이 인생의 진리라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서 이는 여전히 나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표명희가 도달하는 지점은 애초부터 우리 안에 있었던, 그럼에도 이를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는 비상의 오류, 혹은 오류의 비상과 관계한다.

폐사지에서 사라져간 열정과 비상의 흔적들을 읽어내고 그 복원을 꿈꾸는 「거돈사지」에서 ‘그’가 “세상의 모든 탑은 사탑”(201쪽)이라는 걸 깨닫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염원과 꿈이 쌓이고 쌓여 하늘을 향해 자신을 도약시키는 모든 탑은 조금씩은 기울고 뒤틀린 인간의 오류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오류의 너머가 아니라, 오류와 함께 비상하려는 모든 꿈들의 몸짓이 쓸쓸한 뒷모습의 그림자처럼 짙게 투영되어 있다.

「동조선 이야기」는 스모 선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십대에 생의 절정을 경험하고 단 몇 초 만에 명확한 승부가 결정 나며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금세 잊히고 단명하는 거구의 선수들. 이후 이야기는 선아가 어린 시절부터 ‘동쪽’ 조선, 즉 일본에 대해 가졌던 동경과 열정의 시선들이 현실과 마주하면서 하나둘 무너져 내리는 진실의 자리를 따라간다. 그 여정에는 마찬가지로 자신과 매우 닮아버린, 그래서 애처롭지만 불편하기도 한 사촌이 있다. 사촌은 일본의 전형적인 1인 가구 세대주, 즉 독거노인이다. 그의 정성스런 손님 접대와 하루이틀 선아의 떠남을 미루는 핑계와 약속들은 한편으로 선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과 나약함을 일깨운다. 선아의 일본행은, 치열한 경쟁의 자리에서 쫓겨난 그녀가 다시 현실에 발을 디딜 힘을 얻기 위해 선택한 ‘도피’이자 ‘회복’의 여정이었고, 이는 ‘돌아갈 순간’에 정박된 유예의 시간일 뿐이었다. 사촌은 이 고정된 유예의 시간에 억눌려 살아가는 ‘스모 선수’들의 삶을 그 바깥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응원한다. 선아의 시간이 저 고정된 모래판 속 선수들의 삶인지 아니면 어느덧 사촌처럼 그 바깥에서 응원하는 삶의 시간이 되어버린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술을 사러 나가곤 돌아오지 않는 사촌을 기다리며 선아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은 어쩌면 그 불확실한 경계 자체를 자신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일 것이다.

「명찰놀이」에서는 30년 전 존재감 없던 아이였던 정숙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연을 쫓아간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온 초등학교 친구 정숙과의 만남은 소설가가 된 수현이 부정해왔으나 흔들려왔던 세속적 삶의 세계를 끄집어낸다. 30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은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명찰을 달고 모두 정숙의 영향력 놀이 속에서 있는 힘껏 역할놀이를 하고 있었고, 수현은 존재감 있는 작가로서의 삶에 이끌렸던 욕망의 허망함과 마주한다. 정숙이 건네는 달콤한 유혹에 대한 단호한, 최초의 거부로 끝나는 이 소설에서 정숙은 가시화된 수현 내부의 욕망일 뿐, 거절한다고 해서 완전히 쫓아낼 수 있는 외부의 존재가 아니다. 설령 수현이 정숙이라는 존재 자체를 자기 인생에서 지워버리게 된다 할지라도 이 불편한 동행은 삶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번 표명희의 네번째 소설집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어떤 자세를 명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무음과의 동행이 될 것이다.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자기 자신만을 되비추는 타인의 심연이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꿈 앞에서 실패와 희망을 동시에 끌어안으려는 어떤 바깥의 시선이든, 은폐된 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거울상이 발설하는 실재의 풍경이든 우리는 저 아득한 무음의 시선 앞에서 어떤 자신만만한 표정도 자세도 내려놓은 채 그들과의 불편한 걸음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명희의 소설이 풀어놓은 이 무음의 계절은 아직, 한 번만 더를 외치며 하루의 고된 노동을 되풀이하는 인물들의 허기에 찬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있음으로도 가릴 수 없는 없음이 있음을 또 한 차례 반복하고 그 당연한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뿐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때로 어떤 위로와 확신을 얻어가기도 하고, 자신이 발견해낸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차갑고 단단하게 놓인 무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무음의 계절에 사로잡힌 그들은 오히려 그 계절의 무게를 철저히 느끼고 부딪침으로써, 오직 그때에만 선연히 떠오르는 바깥의 감각을 꿈꾼다. 무음이 강제하는 진실 앞에서 그래도 이렇게 묵묵히 걸어가는 생들이 있다고, 그들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이렇게 하루를 걸어가는 상처들이 있다고 되뇐다.

목차

밤의 소리.mp3

그녀는 프로

동조선 이야기

복구

명찰놀이

거돈사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품 해설 무음의 계절 이철주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저자 소개

표명희 (지은이)
2001년 제4회 창비신인문학상에 소설 「야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3번 출구』 『하우스메이트』 『내 이웃의 안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과 장편소설 『오프로드 다이어리』 『황금광 시대』 『어느 날 난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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