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수필문학 연구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너와 나, 우리가 안고 사는 우울. 그리고 그 감정이 가져온 마음의 병 우울증. 화제의 채널



수필은 1930년대 저널리즘의 토대 위에 영역 확장을 이루며 다양한 수필담론 속에서 장르 구축 단계를 거쳤다. 거기에는 당대 유명한 시인, 소설가들의 기여도가 분명 있었으며 정지용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근대 수필사에서는 김진섭, 김광섭, 이양하 등 소위 수필의 독자성을 궁구한 이들의 수필(론)에만 연구가 집중되어 왔다. ‘정지용 수필’은 정지용의 문학적 지평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데도 시에 비해 연구 성과가 양적·질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정지용 수필 연구가 공백이 길었던 것은 모더니스트 시인이라는 시사(詩史)적 입지에 비해 그의 수필에 대해서는 여기(餘技)라는 편향된 시선이 강했기 때문이다. 수필은 삶의 체험을 기록하는 가운데 자기성찰과 심미적 해석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정지용 수필에 대해 주제론적 측면과 형식론적 측면의 양분된 관점을 보였던 선행 연구의 입장을 탈피하여 의식과 형식 사이의 내적 상관성을 바탕으로 접근·해명해 보았다.

우선 정지용 수필의 주요 내적 의식을 상실·실존·고향의식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유년의 결핍과 고향상실로 인한 비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그는 어떻게 그것을 응시하였는지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기응시를 통해 이루어진 유년과 고향의 재인식, 그리고 고향과 전통으로의 회귀는 그의 미학적 의식에 어떻게 승화되어 투사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비록 문학작품이 굴절과 변형을 거친다 하더라도 체험적·성찰적 고백의 정지용 수필에 나타난 의식은 작가의 의식에 육박한다.

한국 근대수필의 역사는 거의 100년에 가깝다. 100년 동안 우리 사회와 문화는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겪었고, 개인 삶의 가장 섬세한 부분을 담아내는 수필은 그 어떤 문학보다도 시대적 여건 변화에 민감하다. 수필이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장르인 만큼 수필의 내용, 형식, 방법, 패턴은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특징을 꼽으라면 그것은 ‘서정성’일 것이다. 서정성은 우리 수필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았고 이 점은 지금 현재도 유효하다.

서정수필은 한국수필의 궁극의 지향점이자 우리 근대수필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흐름이었다. 이 서정성 지향의 출발에 바로 1930년대 정지용의 수필이 있다. 정지용 수필이 우리 수필의 전통을 확립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관해서는 연구가 심화되어야 하겠지만, 한국 수필의 서정적 지향의 전통은 그 단초가 1930년대 정지용 수필에서 마련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지용 수필의 문학사적 가치는 우선 이 부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