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없는 원숭이, 동물학적 인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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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자연·과학
털 없는 원숭이, 동물학적 인간론
  • 출판사문예춘추사
  • 도서명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기원(ORIGINS) - 놀랄 만큼 강렬하고 극적인 진화 


인간은 왜 털을 벗어야만 했을까

인간의 여러 해부학적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인간이 일종의 영장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종류의 영장류이다. 192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의 가족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인간의 피부를 어딘가 적당한 위치에 끼워 넣으려고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괴상한 영장류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에 집어넣어도 인간의 피부는 잘못 놓인 것처럼 동떨어져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피부를 그 줄의 맨 끝에,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꼬리 없는 유인원의 가죽 옆에 놓을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 놓아도 인간의 피부는 두드러지게 다르다. 그 피부가 사실상 털이 없는 벌거숭이라는 점이다. 머리와 겨드랑이와 생식기 주변에 눈길을 끄는 이채로운 털이 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의 피부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하면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더 이상 조사할 필요도 없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종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단순한 관찰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묘사적인 호칭이며, 주제넘은 가정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균형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가 속해 있는 영장류는 원래 원시적인 식충류(食蟲類)에서 생겨났다. 이 초기의 포유류는 안전한 숲속을 성급하게 뛰어다니는 조그맣고 하찮은 동물이었고, 동물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거대한 파충류였다. 그런데 8000만~5000만 년 전에 파충류 시대가 무너진 뒤, 곤충을 잡아먹는 이 작은 동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영토로 과감하게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곳에 널리 흩어져 수많은 이상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일부는 초식동물이 되어, 몸을 지키기 위해 땅 밑에 굴을 파거나 적으로부터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기다란 다리를 갖게 되었다. 


한편 숲속에서는 아직도 작은 동물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진보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곤충만 먹던 식충류는 먹이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하여 과일과 견과류, 딸기류, 식물의 싹과 나뭇잎을 소화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들이 가장 열등한 형태의 영장류로 진화하자, 눈이 얼굴 앞쪽으로 나오면서 시력이 좋아졌고, 두 손은 먹이를 잡는 도구로 발전했다. 3차원적인 시야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팔다리를 갖게 된 이 동물은 두뇌가 커지면서 숲속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3500만~2500만 년 전에 이 조상 원숭이는 어느덧 진짜 원숭이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몸의 균형을 잡는 기다란 꼬리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몸의 크기도 상당히 커지고 있었다. 일부는 나뭇잎만 전문으로 먹는 초식동물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먹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을 유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원숭이 비슷한 동물들 가운데 일부는 몸이 더 커지고 무거워졌는데, 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대신, 두 손으로 번갈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자 꼬리는 쓸모가 없어졌다. 몸이 커졌기 때문에 숲속에서 움직이기가 훨씬 거추장스러워졌지만, 땅 위를 돌아다니는 육식동물들의 공격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단계 - 유인원 단계 - 에서도,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안락하고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숲은 그들에게는 에덴동산이었다. 그들은 숲에 머물면서 과일을 따 먹고 조용히 자기 일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약 1500만 년 전에는 그들의 본거지인 숲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조상 유인원들은 비좁아진 숲속의 요새를 고수하든가, 아니면『성서』에도 쓰여 있듯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감수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침팬지와 고릴라, 긴팔원숭이, 오랑우탄의 조상들은 숲속에 남았고, 그때부터 그들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 이외에 살아남은 유일한 유인원 - 털 없는 원숭이 - 의 조상들은 숲을 떠나, 이미 오래전부터 땅 위에서의 삶에 효율적으로 적응한 동물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성공적인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모험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숲을 떠난 원숭이의 성공담

털 없는 원숭이가 숲을 떠난 뒤부터 이룩한 성공담은 잘 알려져 있다.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 우리 조상들의 앞날은 암담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생존해온 육식동물보다 더 뛰어난 육식동물이 되거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생존해온 초식동물보다 더 뛰어난 초식동물이 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육식동물로도 성공했고 초식동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농업은 고작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을 뿐이고, 우리는 지금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론 육식동물 세계의 살상 전문가들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강렬하고 극적인 일련의 진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털 없는 원숭이의 조상들이 걸어온 역사 가운데 마지막 100만 년에 해당한다. 지상으로 내려온 조상 유인원들은 이미 크고 발달한 두뇌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영장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사회조직도 갖고 있었다. 사냥감을 잡는 솜씨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똑바로 서게 되었고, 그 결과 더 빨리 더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동할 때 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의무에서 해방된 손에 무기를 든 그들은 강하고 효율적인 무기 사용자가 되었다. 그들의 두뇌는 한층 더 복잡해졌고, 그 결과 그들은 보다 영리한 결정을 보다 신속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타고난 무기 대신 인공 무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채택했고, 그것은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단계는 연장을 사용하는 동물에서 연장을 만드는 동물로 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발전과 더불어, 무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이라는 측면에서도 사냥 기술이 향상되었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떼를 지어 사냥하는 집단 사냥꾼이었고, 살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도 발달했다. 늑대들은 떼를 지어 살지만, 다른 무리와는 교류가 없다. 그러나 사냥하는 원숭이는 이미 늑대보다 훨씬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집단끼리 의사를 소통하고 협동하는 문제에도 머리를 쓸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복잡한 작전이 개발되었고, 그에 따라 두뇌도 계속 발달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컷의 사냥 집단이었다. 암컷은 새끼를 키우느라 바쁜 나머지 사냥감을 추적하여 잡는 일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가 없었다. 사냥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냥 기간도 길어지자, 사냥하는 원숭이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조상들의 생활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컷이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수 있는 곳, 암컷과 새끼들이 수컷을 기다리고 먹이를 분배할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일종의 기지가 필요해졌다. 이리하여 사냥하는 원숭이는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다. 이것은 짝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방식과 사회 유형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 먹던 옛날의 생활방식은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정말로 에덴동산을 떠난 것이다. 그는 책임을 가진 원숭이였다. 그는 선사시대의 세탁기와 냉장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가정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 - 불, 식량 창고, 인공적인 피난처 - 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서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정리하면 숲속의 원숭이는 땅 위로 내려와 지상 원숭이가 되었고, 지상 원숭이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었으며, 사냥꾼 원숭이는 영역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고, 이 원숭이는 다시 문화적 원숭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잠시 행진을 멈추어야 한다.  


사냥하는 원숭이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

무엇 때문에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 없는 원숭이가 되어야 했을까? 이에 대해 오랫동안 수많은 상상적 이론이 제시되었다. 가장 그럴듯한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유태보존 작용의 일부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유태보존 이론은 벌거숭이 상태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이다. 벌거숭이 상태가 새로운 특징으로서 갖는 가치, 즉 숲에서 나온 우리 조상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벌거숭이 상태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이 털가죽을 벗어던진 것은 불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밤에만 추위를 느꼈을 테고, 일단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는 사치를 누리게 되자 털가죽이 없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낮의 더위를 견디기에 더 좋은 벌거숭이 상태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더 독창적인 이론도 있다. 숲을 떠나 지상으로 내려온 최초의 원숭이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물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의 몸이 유선형인 이유와 직립 자세까지도 설명해준다. 직립 자세는 우리가 점점 더 깊은 물을 걸어서 건너는 동안 발달했으리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수생이론은 우리의 과거를 재구성할 때 매우 중요한 잃어버린 고리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하여, 전통적인 화석 수집가들을 자극한다. 그리고 약 100만 년 전에 아프리카 해안이었던 지방을 조금만 찾아보면 그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럴듯한 정보를 고고학자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일은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생이론은 가장 그럴듯한 간접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지만 확고한 뒷받침이 부족하다.


벌거숭이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이론들

이런 이론들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주장도 제기되었다. 인간이 털을 잃어버린 것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추세였다는 주장이다. 즉 벌거숭이 상태는 물리적인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냥하는 원숭이의 몸에서 털이 사라진 것은 그들이 신분증명서로 삼기 위해 제멋대로 선택한 특징일 뿐이라고 이 이론은 주장한다. 이것과 같은 계통에 속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인간이 털을 잃어버린 것을 성적인 신호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이 이론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포유류의 경우 수컷이 대체로 암컷보다 털이 많다는 점을 내세워, 털 없는 원숭이의 암컷은 이러한 차이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수컷에 대하여 보다 많은 성적 매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털 없는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털코트를 벗었다는 주장이다. 그늘진 숲에서 나오자, 사냥하는 원숭이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뜨거운 기온에 노출되었다. 그는 몸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털코트를 벗었다. 얼핏 보기에는 이것도 충분히 이치에 맞는 주장이다. 우리도 더운 여름날에는 재킷을 벗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면밀히 조사해보면 이 이론은 금방 무너진다. 우선, 탁 트인 들판에 사는 다른 동물들 가운데 이런 조치를 취한 동물은 하나도 없다. 또 다른 설명이 있는데, 이것은 털 없는 상태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좋은 해답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사냥감을 추격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체온은 상당히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과열상태를 줄여야 할 필요성은 절박했고, 아무리 사소한 개선이라도 바람직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상당한 희생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체온을 내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존은 바로 거기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털을 갖고 있던 사냥하는 원숭이가 털 없는 원숭이로 바뀌는 데 작용한 커다란 요인이다. 유태보존이 그 과정을 도와주었고, 앞에서 언급한 부차적인 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두꺼운 털코트를 벗어던지고 몸의 표면에 뚫린 땀구멍의 수를 늘림으로써, 그는 체온을 상당히 식힐 수 있었다. 물론 날씨가 너무 뜨거우면 노출된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적당히 더운 환경에서는 이런 방법이 바람직하다. 


털이 사라지면서 피하지방층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피하지방층이 발달한 것은 털을 벗은 효과를 없애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피하지방층은 체온이 너무 뜨거워졌을 때는 땀의 증발을 방해하지 않고 추울 때는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냥이 그들의 새로운 생활방식에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털이 줄어든 대신 땀구멍과 피하지방층이 늘어난 것은 부지런한 우리 조상들에게는 꼭 필요한 변화였던 것 같다. 이쯤에서 그의 과거를 떠나, 털 없는 원숭이가 오늘날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짝짓기(SEX) - 강력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성애


우리 인류의 성적 행동은 세 가지 독특한 단계를 거친다. 짝짓기 단계와 성교 이전 단계, 그리고 성교하는 단계가 그것인데, 대개는 이 순서대로 이루어지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적 행동은 다른 영장류의 성적 행동과 어떻게 다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 인간의 성행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을 포함한 어떤 영장류보다도 훨씬 격렬하다. 다른 영장류들에게는 지루한 구애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원숭이나 유인원 가운데 한 쌍의 암수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를 맺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교 이전 단계는 아주 짧고, 이 단계에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대개 몇 가지의 얼굴 표정과 간단한 발성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성교 자체도 아주 짧다. 


그리고 원숭이나 유인원 암컷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인간 여자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발정기는 대개 한 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것도 하등 포유류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영장류의 경향이 극한까지 진행되어, 인간 여자는 사실상 언제라도 남자의 페니스를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털 없는 원숭이는 분명히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인 동물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털 없는 원숭이의 기원을 다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생존하기 위해서 사냥을 해야 했다. 둘째, 그는 사냥꾼으로서는 열등한 몸을 벌충하기 위해 보다 우수한 두뇌를 가져야만 했다. 셋째, 두뇌를 더 크게 키우고 그 두뇌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을 더 연장해야만 했다. 넷째, 암컷은 수컷이 사냥하러 나가 있는 동안 집에 남아서 새끼를 키워야 했다. 다섯째, 수컷들은 사냥할 때 서로 협력해야만 했다. 여섯째,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똑바로 서서 손에 무기를 들어야 했다. 그런 변화들은 모두 동시에 서서히 일어났을 게 틀림없고, 각 변화가 다른 변화를 도와주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특성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 인간의 복잡한 성적 행동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털 없는 원숭이의 수컷은 암컷을 놓아두고 사냥하러 떠날 때, 암컷이 그에게 정절을 지키리라고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암컷은 한 마리의 수컷하고만 짝을 짓는 경향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냥할 때 힘이 약한 수컷의 협력을 얻으려면, 그런 수컷에게도 일정한 성적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수컷들은 암컷들을 더욱 균등하게 나누어 가져야 했을 테고, 성적인 조직체는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제적인 면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수컷도 역시 한 마리의 암컷하고만 짝을 짓는 강력한 성향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수컷들은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은 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이것도 역시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천천히 성장하는 새끼 때문에 부모의 부담이 훨씬 무거워졌는데, 수컷은 아버지다운 행동을 개발해야 했고, 암컷과 더불어 부모의 의무를 분담해야 했다. 이것도 강력한 한 쌍의 암수관계를 맺어야 할 또 하나의 좋은 이유였다. 


이런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그 상황에서 다른 일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사랑에 빠지고, 하나의 짝에게만 성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한 쌍의 암수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개발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결론은 마찬가지다. 그가 이런 성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를 도와준 것 가운데 하나는 어린 시절이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기회를 가졌다. 이 관계는 새끼 원숭이가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관계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이었다. 성숙하여 독립하는 동시에 부모와의 이런 유대를 잃어버리는 것은 관계의 공백상태를 초래할 터였다. 이 공백은 다른 것으로 메워져야만 했고, 그래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새로운 관계를 갈망하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할 때, 그는 이미 이런 관계를 맺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필요성은 충분히 커져서 새로운 형태의 암수관계를 만들어내기에 이르지만, 그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아직 많은 보완책이 필요했다. 그 관계는 적어도 새끼를 기르는 지루한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지속되어야만 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 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는 길고 자극적인 구애 단계를 발전시켜 사랑에 빠질 수는 있었지만, 일단 사랑에 빠진 뒤에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암수의 성행위를 보다 복잡하고 더욱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섹스를 더욱 섹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 기르기(REARING) - 가르치고 모방하는 탁월한 능력


어머니 심장의 고동 소리

누울 때 어머니가 아기를 껴안는 자세는 상당히 암시적이다.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 어머니의 80%가 왼팔에 아기를 눕히고 몸의 왼쪽에 아기를 껴안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현상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오른손잡이 어머니의 83%가 아기를 왼쪽에 껴안지만, 왼손잡이 어머니의 78%도 아기를 왼쪽에 껴안는다. 여기에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게 분명하다. 유일한 단서는 심장이 어머니의 몸 왼쪽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런 방향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아기가 어머니의 몸속에 있을 때 심장의 고동소리에 고착(‘각인’)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렇다면, 태어난 뒤에 이 귀에 익은 소리를 다시 듣는 것은 진정제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특히 아기가 낯설고 새로운 바깥세상으로 방금 내던졌을 때는 귀에 익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어머니는 본능적으로나 무의식적인 시행착오를 거쳐서, 오른쪽보다는 심장이 있는 왼쪽에 아기를 안으면 아기가 덜 보챈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갖다 붙인 이론처럼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결과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고동소리에 각인되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머리보다 심장에 두려고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그대는 내 심장을 가져갔다!”는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어머니들이 아기를 재울 때 조용히 흔드는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아기를 흔드는 동작은 심장 고동과 거의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고, 이것도 아마 자궁 속에 있을 때 친숙해진 율동적인 감각, 어머니의 커다란 심장이 피를 뿜어내며 고동칠 때의 그 감각을 아기에게 ‘상기’ 시켜줄 것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연설을 하는 사람이나 강연자가 몸을 좌우로 흔들거든, 그가 몸을 흔드는 속도와 심장의 박동수를 대조해보라. 많은 청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그는 제한된 상황에서나마 마음을 가장 잘 달래줄 수 있는 몸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옛날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친숙해진 그 박자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이에서 인간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평균 몸무게는 3킬로그램을 조금 넘는다. 이후 처음 2년 동안은 성장 속도가 아주 빠르고, 그 후 4년 동안에도 비교적 빨리 자란다. 그러나 여섯 살이 되면 성장 속도가 상당히 느려진다. 서서히 자라는 이 단계는 사내아이일 경우에는 11세까지, 그리고 계집아이일 경우에는 10세까지 계속된다. 사춘기에 도달하면 다시 성장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소년일 경우에는 10세부터 15세까지 빠른 성장을 보인다. 소녀들은 사춘기가 소년보다 약간 빠르기 때문에 11세부터 14세까지는 소년을 앞지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소년이 다시 소녀를 앞질러, 계속 선두를 유지한다. 신체적 성장은 소녀일 경우에는 19세 무렵에, 소년일 경우에는 훨씬 더 늦은 25세 무렵에 멈춘다. 


한편 아기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걷기 시작할 무렵, 최초의 말을 입 밖에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단어 몇 개를 어눌하게 발음할 뿐이지만, 어휘 수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2세가 되면 보통 아이는 거의 30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 4세가 되면 약 1600개의 단어를 구사할 수 있고, 5세가 되면 어휘 수가 2100개에 이른다. 소리를 흉내 내는 분야에서 우리 인간이 보여주는 이 놀라운 학습 속도는 다른 어떤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무튼 말이야말로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협동활동인 사냥을 하려면 보다 정확하고 유익한 의사 전달 수단이 꼭 필요했고, 말은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성과 관련되어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가르치는 원숭이다

부모의 의무에는 자식을 보호하고 먹이고 씻기고 같이 놀아주는 것 이외에 훈련이라는 중요한 과정도 포함된다. 다른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훈련은 상벌제도로 이루어지는데, 상벌제도는 아기의 시행착오 학습을 차츰 수정하고 조정한다. 그러나 아기는 훈련 이외에 모방을 통해서도 빠른 속도로 배워나간다. 다른 동물이 스스로 애써 배워야 하는 것의 대부분을 우리는 부모를 모방함으로써 재빨리 배운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하는 일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를 모방하여 배운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행동이 추상적이고 고상한 도덕률의 원칙과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행동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모방하면서 우리 몸에 깊이 배어든, 그리고 오래전에 ‘잊혀진’ 인상에 복종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가 관습과 ‘믿음’을 바꾸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이런 인상에 무조건 복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조상들의 축적된 경험을 단숨에 흡수하는 ‘압지(壓紙)’ 단계를 거치는 한, 이것은 우리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십자가다.


다행히 우리는 모방학습 과정이 갖고 있는 이 약점에 대하여 강력한 대항수단을 개발했다. 우리는 왕성한 호기심과 강렬한 탐구욕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모방적 성향에 반발함으로써 균형을 이룬다. 이 균형은 멋진 성공을 낳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모방과 호기심, 노예처럼 무조건 모방하는 태도와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실험이 차츰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가고 있는 사회는 운이 좋은 사회다. 


탐험(EXPLORATION) - 새것 좋아하기와 새것 싫어하기


모험심은 동물들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분화해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생존 기술을 완성하는 데에만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면, 주위 세계의 복잡성에는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개미핥기에게는 개미만 있으면 되고, 코알라에게는 고무나무의 잎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태평세월을 노래한다. 반면 비전문가들 - 동물 세계의 기회주의자들 - 은 한시도 느긋하게 쉴 여유가 없다. 그들은 항상 다음 끼니를 걱정한다. 어디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래서 그들은 구석구석을 모조리 알아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우연히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눈을 반짝여야 한다. 그들은 탐험해야 하고, 탐험을 계속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먹이 문제만은 아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아무 무기도 없는 포유류는 한시도 경계태세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샅샅이 알아두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전문가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 왜 기회주의적인 포유류가 생겨야 했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개미핥기나 코알라 같은 전문가의 생활 방식에는 심각한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생존 장치가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걱정할 게 없지만, 환경이 크게 변화하면 전문가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전문가가 경쟁자들을 앞지르기 위해 극단적으로 전문화했다면 유전자 구조를 크게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을 테고, 따라서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이 변화를 재빨리 역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고무나무 숲이 사라지면 코알라도 사라질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은 항상 살기가 고달프지만,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해도 거기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다. 몽구스의 먹이인 쥐와 생쥐를 빼앗으면, 몽구스는 새알과 뱀으로 주식을 바꿀 것이다. 원숭이에게서 과일과 견과류를 빼앗으면, 원숭이는 나무뿌리와 새싹을 먹을 것이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모든 비전문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회주의적이다. 그 집단은 비전문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원숭이와 유인원 중에서도 털 없는 원숭이는 가장 뛰어난 기회주의자다. 


이것은 털 없는 원숭이의 유태보존적 진화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이다. 어린 원숭이 새끼는 모두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자라날수록 그 호기심은 차츰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간직하고, 때로는 호기심이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결코 조사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만 알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질문에 대답하면,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가장 위대한 생존 기술이 되었다. 참고로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경향을 ‘네오필리아(neophilia, 새것 좋아하기)’라고 부르며, 이는 ‘네오포비아(neophobia, 새것 싫어하기)’와 대조를 이룬다. 낯선 것은 모두 위험물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낯선 것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낯선 것을 피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은 미지의 것을 알 때까지 우리를 계속 몰아댈 게 틀림없다. 우리는 낯선 것에는 계속 관심을 갖지만, 일단 그것을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저장 창고에 쌓아둔다. 창고에 쌓인 이 귀중한 경험들은 나중에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어린이는 항상 이런 일을 한다. 어린이는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부모가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을 감독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것을 억누를 수는 없다. 어린이가 성장함에 따라 탐험을 좋아하는 성향은 이따금 위험 수위에 이르곤 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야생동물처럼 군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어른들이 조금만 틈을 내어 다 자란 야생동물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를 배운다면, ‘그들’이야말로 야생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 자란 야생동물은 새끼들의 탐험을 억제하려고 애쓰고, 사람과 비슷한 보수주의의 아늑함에 안주한다.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계속 진보하고 팽창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ANIMALS) - 공생과 경쟁, 애정과 증오심


모든 고등동물은 그들과 같은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물을 적어도 몇 종은 알고 있는데, 그들은 환경을 공유하는 다른 동물을 다섯 부류 - 먹이, 공생자, 경쟁자, 기생충, 약탈자 -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 이 5가지 부류는 동물에 대한 ‘경제적’ 접근방식이라는 하나의 부류로 통합될 수 있고, 여기에 과학적ㆍ미학적ㆍ상징적 접근 방식을 추가할 수 있다. 관심 범위가 이처럼 넓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우리의 관계는 동물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털 없는 원숭이는 탐험을 좋아하고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먹이로 삼을 수 있는 동물의 목록이 방대한데, 우리 인간의 행위가 갖고 있는 한 가지 특징은 언급해둘 가치가 있다. 즉, 우리는 특별히 선택한 먹이를 키워서 잡아먹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입에 맞는 거라면 거의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먹이의 대부분을 몇 가지 주요 동물로 한정해왔다. 


한편 우리가 다른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의 두 번째 부류는 공생관계다. 공생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두 동물의 관계를 뜻한다. 우리가 다른 동물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에는 그 동물보다 우리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그 동물을 죽이지는 않기 때문에 먹이와 약탈자라는 가혹한 관계와는 구별해야 한다. 그 동물들은 우리에게 이용당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펴준다. 그러나 상황을 통제하는 쪽은 우리이고, 우리와 공생하는 동물은 대개 이 점에서 선택권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은 편파적인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공생 동물, 개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생 동물은 개다. 우리 조상들이 이 귀중한 동물을 언제부터 길들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만 년 전부터는 개와 인간의 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개의 조상인 들개는 사냥하는 우리 조상들과 맞서 경쟁을 벌였을 게 분명하다. 들개와 인간은 둘 다 떼를 지어 큰 먹이를 잡는 사냥꾼이었고, 처음에는 둘 사이에 사랑이 싹틀 여지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들개는 우리 사냥꾼들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사냥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인간보다 훨씬 예민한 후각과 청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잡은 먹이를 나누어 주는 대가로 이런 속성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 거래는 인간에게 유리할 터였다. 어떻게든 이 일은 성사되었고, 개와 인간의 동맹관계가 맺어졌다. 


먹이, 공생자, 경쟁자, 기생충, 약탈자

옛날에는 작은 육식동물을 해충 퇴치에 이용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 추진력이 주어진 것은 진정한 농경시대가 열리고 나서였다. 곡식을 대규모로 저장하게 되자 쥐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쥐 잡기가 장려되었다. 고양이와 족제비, 몽구스가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고양이와 족제비는 그 후 선택 교배로 완전한 가축이 되었다. 한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공생관계는 몸집이 큰 동물을 짐꾼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말과 당나귀, 소, 순록, 낙타, 라마, 코끼리는 모두 짐꾼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또 하나의 부류는 동물이 생산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길들이는 경우인데, 그 동물이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먹이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그 동물을 죽이지 않고 그들의 일부만 빼앗는다. 예컨대 소와 염소에게서는 젖을 얻고, 양과 알파카에게서는 털을 얻고, 닭과 오리에게서는 알을 얻고, 꿀벌에게서는 꿀을 얻고, 누에에게서는 명주실을 얻었다. 사냥 동료, 해충 퇴치자, 짐꾼, 생산자로서의 부류 이외에, 어떤 동물은 보다 특수하고 전문적인 이유로 우리 인간과 공생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예컨대 비둘기는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로 길들여졌다. 


세 번째로 중요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경쟁관계다. 우리는 먹이나 공간을 얻기 위해 우리와 경쟁하는 모든 동물, 또는 우리의 효율적인 삶을 방해하는 모든 동물을 무자비하게 제거한다. 네 번째 주요 부류인 기생충의 미래는 훨씬 더 우울해 보인다. 여기서도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기생충의 지배력은 줄어든다. 그 여파는 다른 모든 동물에게 위험을 가져다준다. 기생충이 사라져 우리의 건강이 좋아지면, 인구가 훨씬 더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 사소한 경쟁자들까지 모조리 없애버려야 할 필요성이 강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주요 부류인 약탈자도 역시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인간을 주식으로 삼은 동물은 사실상 하나도 없었고, 우리가 아는 한 지금까지 육식동물의 약탈 때문에 인간의 수가 크게 줄어든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사자와 호랑이, 들개, 악어, 상어, 맹금류 등 몸집이 큰 육식동물은 이따금 인간의 고기를 맛보았고, 그 대가로 그들이 사라져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얄궂은 일이지만, (기생충을 제외한)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털 없는 원숭이를 많이 죽인 살인자는 기껏 죽여 놓고도 영양가가 풍부한 시체를 포식하지 못하는데, 인간의 이 철천지원수는 바로 독사다.


이 5가지 관계 - 먹이, 공생자, 경쟁자, 기생충, 약탈자 - 는 물론 다른 동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점에 있어서만은 독특하지 않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발전시켰지만, 다른 동물들도 똑같은 유형의 관계를 갖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5가지 부류는 한 덩어리로 묶어서 동물에 대한 경제적 접근방식으로 취급할 수 있다. 이것 이외에 우리는 과학적 접근방식과 미학적 접근방식 및 상징적 접근방식이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접근방식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인정하자

우리는 위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웅대한 사상과 오만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동물의 기본적 행동법칙에 모두 순응하는 보잘것없는 동물이다. 따라서 인구가 앞에서 말한 수준(250년 뒤에는 지구 표면에 4000억의 털 없는 원숭이가 우글거릴 것임)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을 지배하는 행동법칙을 너무 많이 깨뜨림으로써 지배적인 동물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고, 우리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통제를 초월해 있다는 기묘한 자기만족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동물들이 과거에 수없이 멸종했듯이,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조만간 우리는 사라질 테고, 다른 동물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우리는 자신을 생물학적 표본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인간이라는 명칭 대신 털 없는 원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우리를 일부러 모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명칭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우리 생활의 껍데기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유연하다. 행동양식에서는 뛰어난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회주의가 취할 수 있는 형식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의 생물학적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제약의 성격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 제약을 분명히 인식하고 거기에 순응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갖게 된다. 이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천진난만한 구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말은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지성의 기회주의적 발전을 우리의 생물학적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우리는 양이 아니라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진화론적 유산을 부인하지 않고도, 극적으로 흥미진진하게 과학기술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억눌린 생물학적 충동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둑이 터지고, 그동안 갈고 다듬어온 우리의 존재 전체가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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