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나는 여느 고3 학생들과 다름없었다. 성적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초조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와중에도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던 곳은 독서실이었다. 독서실 특유의 고요함이 좋았다. 번잡함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곳,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곳. 그곳의 이름이 괜히 ‘산소 독서실’이 아니었다.

독서실에 도착하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책상 위에 문제집 한 권은 꼭 펴둔다.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그 짧은 의식이 끝나면 책상 위에 엎드려 노트에 아무 말이나 끄적거린다. 뭐라도 적고 싶다.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하는 이과생이지만, 무엇인가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비록 아무도 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꾹꾹 참고, 정말 하고 싶은 내면의 말들을 써 내려갔다. 평소에는 짤막한 단어나 알 수 없는 그림들을 그렸던 것과는 달리 그날따라 꼭 문장이 쓰고 싶었다. 우울의 심연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내가, 저 수면 위로 당장 올라가고픈 절박함을 문장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내 생애 첫 시 <침강>이 되었다.

누가 발에 돌을 묶은 것도 아닌데

계속 가라앉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득한 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올라가야 한다

수면 위로

되도 않는 발장구라도

처절한 몸부림이라도

망가지는 허우적거림이야 어떻겠냐마는

살자

일단 살고 보자

막상 첫 시를 쓰고 보니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엉성하다는 생각에, 누군가 이 어설픈 문장들을 보고 비난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부끄러움은 한없이 커졌다. 그래서 얼마간은 조금 멋 부린 낙서 정도로 여겼다. 돌이켜보면 열아홉 살, 가장 깊이 가라앉은 순간에 쓴 그 ‘첫 시’는 내면의 창작욕을 세상으로 끄집어낸 분기점이었다. 부끄러움을 참고 토해낸 시는 다른 시를 토해내기 시작했고, 한번 발현된 창작욕은 시를 넘어 산문과 사진, 노래로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삐뚤빼뚤하지만 최대한 바르게 쓰려고 노력했던 첫 시는 15년 뒤, 나의 첫 시집에 수록되었다. ‘처음’이 주는 그 부끄럼을 견뎌낸 보상은 꽤 넉넉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환희는 서투름과 부끄러움에 묻힐 때가 많다. 게다가 타인의 시선을 실제보다 더 예민하게 의식할수록 찰나의 환희는 요원해진다. 처음 쓴 시에 대한 환희를 재발견하는데 꼬박 15년이 걸렸던 걸 생각해 보면. 그때는 부끄러운 열아홉 살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아직도 창작할 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자주 마주한다. SNS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에 나 자신과 창작물을 끊임없이 노출해야 하지만, 매번 어렵다. 첫 시를 쓸 때 느낀 그 부끄러움은 예외 없이 찾아온다. 창작의 숙명일까,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의 숙명일까. 다행히 시간의 흐름과 쌓여가는 창작물에 부끄러움의 강도는 조금씩 약해져 왔다. 

가끔 부끄러움이 솟구칠 때면 독서실에 엎드려 처음 시를 쓰던 날을 기억해 낸다. 가까스로 창작욕을 토해냈던 그 첫 순간을 생각하면, 어떤 창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