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담았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나와 혼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여행 사진가로 지내왔던 10년의 세월과는 달리 그 사이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그야말로 세상을 덮쳤다. 그 여파는 여행 업계에도 크게 미치게 되어 해당 업체는 휘청거리며 하나둘 쓰러져갔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 속에서 나 역시 불가피하게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곳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 어제와 같은 답답한 오늘이 나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매 순간이 속수무책으로 쌓여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힘없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다행히 큰 탈 없이 일상의 톱니바퀴는 계속 굴러가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과거에 여행 사진가였다는 기억조차 점점 희미해져갔다. 

늘 그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나에게 있어서 더 춥고 차갑게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다. 보통 고정으로 하는 일들의 계약은 1년 단위로 돌아가는데, 연말이 되면 남게 될지 아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게 될지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내가 하고 있던 일의 대부분이 한꺼번에 계약 종료가 되었다. 그렇게 함께 고생하던 동료들도 계약이 종료되면 보고도 없이 일이 끝나게 되는 것을 겪게 되는 상황이 태반이다. 

때로는 서운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의 생태계가 이런 것을 인력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내가 더 단단하고 강해지는 수밖에.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서운하고 아쉬워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보다 당장 새로운 일을 수주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 믿고 따르는 처자식이 있기에, 현실적으로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더 바쁘게 돌아다녀야 해서 한없이 감상에 빠질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려는 것일까. 새해가 되면 새로운 일이 다시 내 일상에 재배치된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곤 한다. 그렇게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오게 되면 어김없이 12월, 한 해의 끝에 다다르게 되고, 어느새 다시 한 해의 시작 앞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여전히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일들과 함께 이 시간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이 시기가 될 때면, 다가오는 한 해의 곳간을 채워야 할 불안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거나 잠시 잠이 들었다가 번쩍 눈이 떠지기도 한다. 

올해에도 늘 그렇듯이 분명 나에게서 떠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겪어 봤던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자리 잡은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보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새해에도 또다시 태양은 뜨겁게 떠오를 테니. 부디 올해에는 여행을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새해를 기다려본다. 

(…)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기도는 나의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

이제 새로운 내가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생애,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

-구상의 시 <새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