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부터 시작된 사진은 인류 탄생 이래 사실 묘사를 중시했다. 초상을 주로 그렸던 화가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사진기’라는 도구. 이 신문물은 화가들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던 궁정 화가들에게도 생계를 위협하는 발명품이었다. 이에 직접적인 자극을 받게 된 화가들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예술사적으로는 인상파의 출현을 야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진기는 야수파와 입체파 등의 현대미술을 태동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다른 직업 없이 오로지 사진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그간의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이 던지던 몇 가지 질문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사진기가 있는 시대에 사진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요?” 이 물음은 아마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디지털 사진기의 등장으로 누구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뜻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년 사이에 나날이 발전해 가는 기술로 인해 AI가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실제로 사진을 누구보다 더 잘 찍는다고 자부하고 있던 사진작가들에게는 사진기가 역사에 처음 등장했던 그 시대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기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 사진기는 인물 사진, 기록 사진, 보도 사진, 광고 사진, 예술 사진 등 여러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필기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소설을 잘 쓰는 것이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예술 분야는 그 차이와 정도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 그러면 사진기는 어떠할까? 그 답은 독자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사진기가 일상생활에서의 도구를 넘어 찍는 분야에 따라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지, 예술적인 부분을 중요시할 것인지, 그 기준에 맞춰 용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기도구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알게 되듯이 사진 역시 기초를 배우고 이를 발전시켜 사용할수록 비로소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사진작가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사진 찍기를 즐겨하진 않았다. 지금도 간단하게나마 휴대전화로라도 사진을 잘 찍고 그러진 않는다. 주변에서 자신을 찍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매우 곤란해하는 사람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무엇보다 사물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석을 담아내는 ‘아이디어’와 ‘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나는 매년 수십만 명 이상이 사진기로 찍는 아이슬란드 바닷가의 산을 <소망의 봉우리>라는 제목으로 명명해 바이킹이 최초로 도래한 장소를 그 당시 사람들의 상황을 추체험하여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PX3국제사진전’에서 수상하게 되었다. <다른 행성의 아침><한번은 품어 본 꿈>은 그것들이 실재(實在)하긴 하지만, 감상자들로 하여금 동화를 읽고 환상을 그리게 할 목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소망을 잡는 아버지>는 나 자신도 어려웠던 그 시절, 그 어부의 마음과 동일 선상에 있던 ‘그 순간’을 담았다.

나는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적절한 소재를 선택해 ‘사진으로 무엇을 말할까?’, ‘어떤 새로운 시선으로 사진에 표현할까?’, 바로 이 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랑, 기쁨, 슬픔 등 동사와 형용사를 사진의 언어로 구사하고자 한다. 이는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도 절대 쉽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일련의 작업 과정이 지난한 시간이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평안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다. 이도 저도 싫다면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즐겁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시할 때가 온다면 자신 있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 사진은 미적 대상으로부터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내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형식으로 정착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