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읽는 인문학 시리즈 - 2회 입니다.

걷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척 일상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걷기’에 관한 책을 사려니 다섯손가락으로 꼽는다. 하기사 ‘숨잘쉬는 방법, 숨쉬기에 관한 철학’책을 본 적이 없으니 마찬가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기는 했지만 ‘맨발로 걷는 느낌을 주는 신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걷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일단 개념을 잡았으니 많이 걸으면서 이 신발의 장단점을 느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이버의 ‘걷기 클럽’에도 가입해서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것은 운길산역에서 내려 잠시 산길을 걷다가 능내역으로 해서 팔당역까지 걸었을 때였다.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왜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쉽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멀리 돌아가며 굳이 걸을려고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바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걷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인 보행은 현대성으로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이다. 걷기는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속에서 질러가는 지름길이요 거리를 유지하기에 알맞은 방식이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굳이 걷다보면 나는 내가 가는 길과 하나가 됨을 느낀다. 마구 달릴 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걸으면서 ‘어, 여기에 이런 게 있었네!’하는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걷기와 등산은 즐거움으로의 초대일 뿐, 잘 걷거나 빨리 올라가는 방법의 안내가 아니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 난 그게 좋다. 그리고 산과 들을 걷는 것은 더욱 좋다. 도시도 우리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자연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삶의 활기를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두발로 땅을 디딛고 발바닥으로 땅의 온기를 느낄 때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실감한다. 이렇게 “우리가 자동차나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고 걸을 때, 우리의 여행은 우체국의 소포처럼 운송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은 참 걷기에 좋은 날씨였던데다가 주변 풍광도 좋았다. 게다가 강변을 따라 이어진 철길을 걸을 때는 모든 것이 밝았다. 물비늘이 반짝거리는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철길에 카메라를 바짝 놓고 그 끝없이 이어지는 길의 의미를 찾으려고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다. 우리가 걸은 철길은 불과 7-8킬로나 될까?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 채 10분이나 걸릴 길을 무려 5시간동안 걷다가 먹다가 쉬다가 하면서 즐겼다. 일상적인 시계로 본다면 그런 일들은 시간 개념이 참 없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언제나 시끄럽고 혼돈스러운 일상에서 가끔은 그렇제 지낸들 세상이 뭐가 달라질까?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 준다. 걸어서 하루를 30킬로미터를 갈 때 나는 내 시간을 일 년단위로 계산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삼천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나는 내 인상을 시간단위로 계산한다”는 게 현대적 의미 시간개념이다. 느릴수록 멀리 생각하고 바라볼 수있지만, 빠를수록 눈앞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게 여행의 안목이다. 

철길위도 걸어보았다. 맨 땅을 걷는 것도 기적이라고 하는데, 철길을 걷기는 더 힘들었다. ‘걷기는 언제나 미완상태에 있는 실존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불균형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보행자는 규칙적 리듬으로 바로 앞서의 운동에 그와 상반되는 또 하나의 운동을 즉시 연속시켜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을 때마다 항상 불안정한 상태가 출현하면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발한다. 요컨대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천천히 걸으면 단절이 생길 수있으므로 우리는 먼저 발걸음에 다음 발걸음이 적절히 따르도록 조화를 기해야만 비로소 잘 걸을 수있게 된다.’ 이 구절을 되새기면서 잘 걸어보려고 했지만 힘이 들었다. 옆에 같이 가던 회원과 내기를 했는 데 내가 졌다. 마침 가지고 갔던 여분의 양말 한 켤레를 주자, 무척이나 기쁘게 웃었다. 그건 물질적인 선물때문이라기보다 같이 걸었다는 인연과 즐거움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우리에게 몸이 있는 한 그 것을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 주말이었고, 책이었다.